유한한 시간, 확장하는 삶
경희고려한의원장
한의학박사 문 희 석
우리는 매일 똑같이 24시간을 부여받지만, 그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는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한순간이 길게 늘어져 견디기 어렵고, 때로는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시계는 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우리가 체험하는 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의식과 감각이 빚어내는 경험의 형태일 것입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낯선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일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새롭게 조합하고, 흔한 풍경을 전혀 다른 빛깔로 바꾸어내는 일입니다. 시인이 언어로 시간을 늘리고 깊게 하듯, 우리 또한 삶의 순간을 시처럼 살아낼 수 있습니다. 사소한 한 장면을 처음 보는 듯 바라보고, 그것을 마음속에 붙잡는 순간,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고 확장됩니다.
낯섦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야말로 우리를 현재로 데려다주는 힘입니다. 익숙한 길에서는 마음이 과거나 미래로 흩어지지만, 낯선 길에서는 모든 감각이 ‘지금 여기’에 모입니다. 의심과 질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은 익숙한 사고의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통로가 됩니다. 결국 시간의 확장은 두려움과 의심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시간을 늘린다는 것은 시계를 거슬러 멈추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태도를 바꾸어, 순간을 더욱 진하게 체험하는 일입니다. 커피 한 잔의 향, 스쳐 지나가는 바람, 우연히 마주친 이의 얼굴을 잠시라도 새롭게 바라볼 때, 그 순간은 짧지만 영원처럼 남습니다.
시인은 시간을 조율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순간을 삼켜 흘려보내지 않고, 잘근잘근 그 맛을 기억 속에 길게 남깁니다. 우리 또한 시인처럼 살 수 있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따라 길이와 깊이가 달라집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시간을 잃으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시처럼 확장하며 살아갈 것인가. 이 물음 앞에서, 삶의 태도는 곧 시간의 형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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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