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자아의 괴리에서 비롯된 고통, 그리고 그 치유에 대하여
경희고려한의원장
한의학박사 문 희 석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은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의지라고 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 깊숙이 삶을 움직이는 원초적인 힘, 즉 ‘의지’를 지니고 있다. 이 의지는 살아가려는 힘이자 존재하려는 동력이며, 한의학에서는 이를 정(精)과 기(氣)의 원천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나’라고 인식하는 자아는 이러한 본질의 의지가 감각, 감정, 의식, 행동이라는 도구를 통해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하나의 현상적 모습일 뿐이다.
문제는 이 자아가 본래의 의지를 망각한 채 욕망과 비교, 역할과 성취로 자신을 규정하게 될 때 발생한다. 욕망은 곧 집착을 낳고, 집착은 기혈의 흐름을 막아 정기신(精氣神)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이는 곧 심화상염(心火上炎), 간기울결(肝氣鬱結), 비기허약(脾氣虛弱) 등으로 이어지며, 불면, 우울, 만성 피로와 같은 현대의 고질적 질환을 만들어낸다.
치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핵심은 본래의 ‘의지’—즉, 생명의 본연한 흐름—을 다시 자각하고, 그것과 자아의 괴리를 좁히는 데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위해 정기신의 조화를 회복하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기공과 명상, 호흡과 좌선, 사상의학에 따른 섭생과 감정 조절 등이 그 예다. 오장정신의 균형을 바로잡고, 자아의 과잉된 역할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본연의 생명성과 다시 접속하게 된다.
삶의 고통은 때로 자아가 본래의 의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내면의 조화를 되찾는 길, 그 안에 진정한 치유가 있다.
2025.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