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끈, 미주신경과 한의학
경희고려한의원장
한의학박사 문 희 석
인체에는 생존을 위한 신경 회로가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주신경은 뇌에서 시작해 심장과 폐, 소화기관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을 지배하며, 몸과 마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할을 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단순히 신경으로만 보지 않고, 심(心), 폐(肺), 간(肝), 비(脾)의 조화로운 기혈 운행으로 해석해왔다.
미주신경은 진화적으로 세 갈래 생존 전략을 품고 있다. 위급 상황에서 몸을 정지시키는 배측미주신경, 도피와 흥분을 유도하는 교감신경, 그리고 사회적 유대와 감정의 안정을 돕는 복측미주신경이 그것이다. 이 중 복측미주신경은 심박을 안정시키고 얼굴과 성대의 움직임을 조율하여 말과 표정, 공감을 가능하게 하며, 한의학의 관점에서는 심기(心氣)와 폐기(肺氣)의 안정과 관련 깊다.
문제는 이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흔들릴 때 발생한다. 최근 환자들 중에는 명확한 기질적 질환 없이도 실신, 어지럼, 가슴 두근거림, 식은땀, 무기력 등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는 흔히 ‘미주신경실신’으로 알려진 현상으로, 배측미주신경의 급격한 과활성화로 인해 심박과 혈압이 떨어지며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반응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기궐(氣厥) 또는 심허기탈(心虛氣脫)로 설명하며, 심기(心氣)와 비기(脾氣)가 허약할 때 발생한다고 본다.
실신 자체는 짧은 시간이면 회복되지만, 반복되면 일상과 사회활동에 큰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 한방에서는 기혈을 보하고, 자율신경의 균형을 조절하는 침, 뜸, 약물치료를 병행하여 미주신경의 안정을 도모한다. 또한 복식호흡, 규칙적 식사, 안정된 인간관계는 복측미주신경을 강화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한의학의 양생법(養生法)과도 맞닿아 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신경과 기혈 또한 따로 흐르지 않는다. 미주신경은 그 둘을 잇는 다리이자, 우리가 내면의 질서를 회복해가는 중요한 통로다.
2025.5.28